📑 목차
집필이 갑자기 무거워지는 순간이 있다.
분명 어제까지는 잘 쓰고 있었고, 오늘도 자리에 앉아 파일을 열었는데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말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작동하는 원인은 아주 은밀하다. 바로 이미 존재하는 글과의 비교다.
다른 책, 다른 작가의 문장, 어제의 나, 심지어 아직 쓰이지도 않은 ‘완성된 내 글’과의 비교.
이 비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집필의 속도를 가장 빠르게 늦춘다.

1. 집필은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멈춘다
집필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앞으로 밀어내는 시간이다. 완성도를 높이는 시간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던 문장을 세상에 나오게 만드는 시간이다. 그런데 비교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진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기준으로 지금의 문장을 재단한다.
이 문장이 저 문장보다 부족한지 이 흐름이 저 책만큼 탄탄한지 지금 쓰는 톤이 어제보다 나아졌는지 이 질문들이 떠오르는 순간 집필은 더 이상 전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교는 항상 결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괜찮은가” “이 정도면 충분한가”라는 질문은 지금이 아니라 이미 끝난 뒤에 해야 할 질문이다. 집필의 시간 안에 결과 기준이 들어오는 순간 손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앞으로 나아가던 에너지는 멈춰 서서 재는 데 쓰인다.
그래서 비교는 집필을 가장 조용하게 멈추게 한다.
2. ‘이 정도면 부족하다’는 판단은 너무 이르다
집필 중에 드는 “이건 좀 부족한데”라는 생각은 대부분 틀리지 않다. 실제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문장이 거칠고 논리가 덜 자랐고 중심이 아직 흐릿하다. 문제는 그 판단이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이르다는 점이다. 아직 충분히 쌓이지도 않은 글을 두고 이미 완성된 기준과 비교하면 부족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집필의 초반과 중반은 본질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단계에서 완성도를 요구하는 것은 씨앗에게 나무의 형태를 묻는 것과 같다. 부족함은 집필의 실패 신호가 아니라 정상 신호다.
글이 아직 자라고 있다는 표시다. 이 신호를 문제로 받아들이는 순간 집필은 멈춘다.
부족함을 없애려다 글을 더 이상 키우지 못하게 된다.
3. 47분 집중 집필 루틴은 ‘비교 불가능한 구조’를 만든다
47분 집중 집필 루틴에서는 비교가 성립되지 않는다. 시간은 짧고 끝은 항상 중간이며 완성 이미지를 호출하지 않는다.
이 구조 안에서는 지금 쓴 글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판단할 수 없다.
몇 퍼센트인지도 모르고 서문의 일부인지, 본론인지 결론 근처인지조차 알 수 없다. 비교하려면 위치와 기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루틴은 그 기준 자체를 지워버린다. 비교할 기준이 사라지는 순간 집필은 다시 본래의 역할로 돌아간다.
지금의 문장을 그냥 다음 문장으로 보내는 일. 이 단순한 움직임이 집필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4. 비교는 집필을 ‘평가 과제’로 바꾼다
비교가 시작되면 집필은 더 이상 쓰는 일이 아니다. 평가 과제가 된다. 앞으로 한 줄을 더 보내는 대신 이미 쓴 문장을 붙잡고 통과 여부를 묻기 시작한다.
- 이 문장은 통과 가능한가
- 이 단락은 남길 가치가 있는가
- 이 방향은 선택해도 되는가
이 질문들은 겉보기에는 책임감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모두 집필 이후에 등장해야 할 질문이다. 정리와 편집의 질문이다.
집필 중에 이 질문들이 등장하면 글은 앞으로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평가는 멈춰 서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가하려면 전체를 보고, 비교 대상을 불러오고,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 순간 손은 키보드 위에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는 앞으로가 아니라 뒤와 옆을 본다.
평가가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등장 시점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쓰는 시간에 평가를 끌어들이면 집필은 앞으로 가는 힘을 잃는다. 글은 더 좋아지지 않는다. 그저 더 자주 멈출 뿐이다.
5. 비교 강박을 내려놓기 위한 실전 인식 7가지
이 인식들은 글의 수준을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집필의 시간을 보호하기 위한 기준이다. 지금 쓰는 시간을 평가로부터 지키기 위한 장치다.
지금 쓰는 글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 아직 생성 중이다
완성된 글과 비교하지 않는다
→ 단계가 다르다
어제의 글과도 비교하지 않는다
→ 흐름은 매번 다르다
부족함은 정상 상태다
→ 쌓이는 중이라는 신호다
지금은 위치를 정하지 않는다
→ 위치는 나중에 정해진다
비교 욕구는 멈춤 신호다
→ 멈추라는 신호가 아니라
→ 계속 쓰라는 신호다
집필 중에는 기준을 만들지 않는다
→ 기준은 정리 단계의 일이다
이 인식이 자리 잡으면 집필은 비교 앞에서 속도를 잃지 않는다. 비교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그 욕구를 따라가지 않고 그냥 다음 문장을 보낸다. 이 선택 하나가 집필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6. 비교하지 않을 때 집필은 끝까지 간다
끝까지 간 집필을 보면 자신의 글을 계속 비교하며 쓴 흔적은 거의 없다. 대신 계속 썼던 흔적만 남아 있다.
중복된 문장, 어색한 단락, 정리되지 않은 덩어리들. 처음부터 보면 엉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흔적들은 집필이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다. 47분 집중 집필 루틴이 만드는 것은 잘 비교된 글이 아니다. 비교 없이 살아남은 글이다. 평가를 유예한 채 끝까지 도달한 원고다. 오늘 쓴 문장이 다른 글보다 부족해 보여도 괜찮다. 지금은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 위로 다음 문장이 올라갈 수 있는 상태를 남겨두는 것이다.
비교를 미룬 집필만이 끝까지 간다. 그리고 끝까지 간 집필만이 나중에 비교할 가치조차 얻게 된다.
비교하지 않을 때 집필은 끝까지 간다.
끝까지 간 집필을 보면 자신의 글을 계속 비교하며 쓴 흔적은 거의 없다. 대신 계속 썼던 흔적만 남아 있다.
중복된 문장, 어색한 단락, 정리되지 않은 덩어리들. 이 흔적들은 부족함의 증거가 아니라 집필이 살아 있었던 기록이다.
47분 집중 집필 루틴이 만드는 것은 잘 비교된 글이 아니다. 비교 없이 살아남은 글이다. 평가를 유예한 채 앞으로만 이동해 온 원고다. 오늘 쓴 문장이 다른 글보다 부족해 보여도 괜찮다. 어제 쓴 문장보다 나아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은 그 판단을 할 시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 위로 다음 문장이 올라갈 수 있는 상태를 남겨두는 것이다.
비교를 미룬 집필만이 끝까지 간다. 그리고 끝까지 간 집필만이 나중에 비로소 비교할 자격을 얻는다.
집필은 비교에서 이기는 일이 아니라, 비교를 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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