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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20. 확신이 없어도 47분 집중 루틴 집필은 계속된다

📑 목차

    집필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멈추는 순간은 늘 비슷하다. 피곤해서도 아니고,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다. “이 방향이 맞는 걸까?”
    “지금 쓰는 이 이야기를 끝까지 가져가도 될까?” “괜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많은 사람들은
    확신이 있어야 계속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방향에 대한 믿음, 이 글이 될 것이라는 감각, 이 책이 의미 있을 거라는 신호가 먼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집필의 현장은 다르다. 확신이 있어서 쓰는 경우보다 확신이 없는데도 쓰는 시간이 훨씬 길다. 문제는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으면 멈춰야 한다고 믿는 데 있다. 집필은 확신 위에서 굴러가는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이 없을 때도 계속 쓰일 수 있는 구조가 있을 때 끝까지 간다.

    47분 집중 집필 루틴은 확신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대신 확신이 없어도 손을 놓지 않게 만든다.

    책20. 확신이 없어도 47분 집중 루틴 집필은 계속된다

    1. 집필을 멈추게 만드는 것은 ‘불확실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해석’이다

    집필 중에 느끼는 불확실성은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방향이 흐릿해 보이고, 지금 쓰는 문장이 중심에서 벗어난 것 같고, 이 글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은 집필 과정에서 거의 항상 등장한다. 오히려 이 감각이 전혀 없는 집필이 더 드물다. 문제는 이 불확실성 자체가 아니라 그 상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불확실성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멈춘다. 확신이 생길 때까지, 방향이 또렷해질 때까지, 이 글이 맞다는 감각이 올 때까지 손을 놓고 기다린다. 하지만 집필에서의 불확실성은 실패 신호가 아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경고도 아니다. 그것은 아직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는 표시다. 불확실성은
    집필을 멈추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지금 이 상태에서도 계속 쌓을 수 있다는 배경음에 가깝다.

     

    2. 확신을 기다리는 집필은 대부분 다시 시작되지 않는다

    확신을 기다리는 집필에는 치명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확신은 가만히 기다린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확신은 충분히 쌓인 글을 시간을 두고 바라볼 때 뒤늦게 생긴다. 하지만 집필을 멈춘 상태에서는 쌓이는 것이 없다. 문장이 늘지 않고, 재료가 늘지 않는다. 쌓이지 않으면 확신도 오지 않는다. 이렇게 집필은 확신을 기다리다 멈추고, 멈췄기 때문에 확신을 얻지 못하는 순환에 들어간다. 그래서 많은 원고가 “조금 더 생각해 보고”라는 말과 함께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확신은 집필의 출발 조건이 아니다. 집필이 계속되었을 때 뒤늦게 따라오는 결과다.

     

    3. 47분 집중 집필 루틴은 ‘확신 유예 구조’를 만든다

    47분 집중 집필 루틴에서는 확신을 가질 시간이 없다. 시간은 짧고, 끝은 항상 중간이며, 완성된 이미지를 전제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다보는 구조도 없고, 이 글이 무엇이 될지 설명하라는 요구도 없다. 이 구조 안에서는 “이 방향이 맞는지”를 판단할 근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 쓰는 문장이 책의 중심인지 아닌지, 앞부분에 놓일지 중간에 들어갈지, 남을 문장인지 사라질 문장인지 결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하지 않아도 아무런 실패로 기록되지 않는다. 확신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필이 중단되거나 무효가 되지 않는다.

    47분 동안의 기준은 단 하나다. 확신이 있든 없든 문장이 앞으로 갔는가.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문장이 늘었는가, 생각이 다음 칸으로 이동했는가. 확신을 미뤄둔 채 집필만 통과시키는 구조. 이 구조가 집필을 다시 가능하게 만든다.

     

    4. 확신 없이 쌓인 문장들이 방향을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방향은 확신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방향은 확신 없이 쌓인 문장들, 망설이며 쓴 단락들, 중심에서 벗어난 것 같았던 이야기들이 겹치고 겹칠 때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다. 같은 질문을 여러 날에 걸쳐 반복해서 쓰고, 비슷한 주장을 조금씩 다른 언어로 여러 번 남길 때 그 반복 자체가 하나의 방향이 된다. 처음에는 중복처럼 보이고, 헤매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중에 보면 그 지점에만 계속 문장이 몰려 있다.

    처음부터 확신을 가진 글은 단단해 보일 수는 있지만 의외로 잘 자라지 않는다. 확신이 문장을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확신 없이 쓰인 글은 형태는 흐릿해도 계속 자란다. 문장이 늘어나고, 재료가 쌓이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중심이 떠오른다.

    방향은 확신의 결과가 아니라 누적의 결과다.

    5. 확신 강박을 내려놓기 위한 실전 인식 7가지

    이 인식들은 집필을 가볍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집필을 끝까지 데려가기 위한 현실적인 기준이다. 확신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확신이 없어도 계속 쓸 수 있게 만드는 인식들이다.

     

    지금 확신이 없어도 정상이다
    → 대부분의 집필은 이 상태로 시작된다

     

    방향이 흐릿해도 쓸 수 있다
    → 흐릿함은 잘못이 아니라 과정이다

     

    이 문장이 중심이 아닐 수 있다
    → 중심은 쓰는 도중에 정해지지 않는다

     

    확신은 쓰다 보면 생긴다
    →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다

     

    불안은 멈춤 이유가 아니다
    → 집필의 기본 배경음에 가깝다

     

    오늘의 집필은 판단 대상이 아니다
    → 통과만 해도 충분하다

     

    확신 없는 집필도 집필이다
    → 남아 있으면 재료가 된다

     

    이 인식이 자리 잡으면 집필은 확신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확신이 없어서 멈추는 대신, 확신이 없는 상태로도 계속 앞으로 가게 된다.

    6. 확신이 없어도 집필은 끝까지 간다

    끝까지 간 집필을 보면 초반부터 확신에 차 있었던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계속 의심했고, 계속 흔들렸고, 계속 이게 맞는지 모르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던 기록이 남아 있다.

    47분 집중 집필 루틴이 만드는 것은 확신 있는 집필이 아니다. 확신이 없어도 다음 날로 이어지는 집필이다. 오늘 쓴 문장이 맞는지 린지 몰라도 괜찮다. 지금은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 위로 내일의 문장이 올라갈 수 있는 상태를 남겼는가다.

    집필은 확신을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확신을 미룬 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이 완주한다. 그리고 그렇게 끝까지 살아남은 집필만이 어느 순간 “이게 맞았구나”라는 확신을 뒤늦게 얻게 된다.

     

    집필은 확신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확신이 없어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는 일이다.
    오늘 쓴 문장이 맞는지 틀린지, 이 방향이 옳은지 아닌지는 지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문장 위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그 집필은 살아 있다. 47분 집중 집필 루틴은 확신을 주지 않는다. 대신 확신이 없을 때도 손을 놓지 않게 만든다. 그렇게 쌓인 시간만이,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그래서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확신을 만든다. 집필은 확신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끝까지 남아 있었을 때 비로소 확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