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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12. 집필을 오래 지속시키는 사람은 ‘의미’를 찾지 않는다

📑 목차

    집필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재능도, 시간도 아니다. 대부분은 의미를 너무 빨리 찾으려는 태도에서 흔들린다. 지금 쓰는 문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 글이 어디로 가는지, 과연 책이 될 수 있는지 묻는 순간 집필은 갑자기 무거워진다. 아직 충분히 쓰이지도 않았는데 평가가 먼저 개입한다. 이 글은 그 평가를 잠시 뒤로 미루기 위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집필의 초반과 중반에는 의미가 흐릿한 상태가 정상이며, 방향 없는 문장이 쌓이는 시간 자체가 과정이라는 전제다.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는 시간,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확보할 때 집필은 비로소 살아남는다. 이 글은 더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쓰는 상태를 유지하는 법에 대해 말한다.

    집필을 오래 지속시키는 사람은 ‘의미’를 찾지 않는다

    1. 집필을 멈추게 만드는 질문은 대부분 너무 크다 

    집필을 하다 멈추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이런 질문이 고개를 든다.

    • 이 글이 정말 필요한가
    • 이 이야기가 책의 핵심이 맞는가
    • 지금 쓰는 방향이 옳은가

    이 질문들은 겉으로 보면 진지하고 성숙해 보인다. 책을 책임 있게 대하는 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집필의 시간 안에서는 이 질문들이 가장 위험해진다. 왜냐하면 이 질문들은 모두 지금 쓰고 있는 문장 하나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완성된 책 전체의 의미’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전체를 기준으로 지금의 한 문단을 평가하는 순간 집필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잃는다.

    지금 쓰는 문장이 아니라 미래의 결과물이 현재의 손을 붙잡아 버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미를 고민해서가 아니다. 의미를 너무 이른 시점에 호출했기 때문이다.

    집필 중에 던지는 이 큰 질문들은 정답이 없어서 위험한 게 아니라, 지금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집필을 멈추게 만든다.

     

    2. 의미를 먼저 찾으려 할수록 집필은 짧아진다

    많은 사람들은 의미가 분명해야 글을 끝까지 쓸 수 있다고 믿는다.

    의미가 있어야 동력이 생기고 의미가 보여야 방향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의미를 먼저 찾으려 할수록 집필은 점점 짧아진다.

    • 이 문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 이 장이 책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 이 주제가 과연 충분히 중요한지

    이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 집필은 더 이상 쓰는 일이 아니라 선별하는 일이 된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지금 이 글이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선별은 집필의 역할이 아니다.

    집필 중에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는 아직 자라지도 않은 글을 미리 잘라보는 것과 같다.

    아직 연결되지 않은 생각에게 “쓸모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의미는 집필의 출발점이 아니라 집필이 충분히 살아남았을 때 뒤늦게 드러나는 윤곽이다.

    의미를 앞세운 집필은 대부분 너무 일찍 멈춘다.

     

    3. 47분 집중 집필 루틴은 ‘의미 판단’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47분 집중 집필 루틴 안에서는 의미를 판단할 시간이 없다.

    시간은 명확하게 제한되어 있고 끝은 항상 중간이며 어떤 결과도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의미를 무시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의미를 지금 판단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구조다.

    47분 동안 할 일은 단순하다.

    지금 떠오른 문장을 남기고 지금 이어지는 생각을 통과시키는 것,

    이 시간 안에서는 이 글이 중요한지 이 장이 살아남을지 책의 중심이 될지 결정할 자리가 없다.

    의미 판단을 할 틈이 없기 때문에 집필은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의미가 보이지 않아도 손은 계속 움직이고 문장은 계속 쌓인다.

    의미 판단이 유예되는 순간 집필은 비로소 자기 속도로 걷기 시작한다.

     

    4. 의미는 쓰는 동안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미에 대해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다.

    의미는 글을 쓰는 순간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쓰는 동안 “이게 무슨 의미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의미는 쓰는 순간이 아니라 쌓인 글을 나중에 바라볼 때 생긴다.

    • 여러 날에 걸쳐 쓰인 문장들
    • 서로 다른 방향에서 적힌 단락들
    • 중복되고 어긋난 생각들

    이 조각들이 충분히 모였을 때 비로소 어떤 중심이 떠오른다.

    그때 사람들은 “아, 이 책은 이 이야기였구나”라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그 중심이 처음부터 계획된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즉, 의미는 집필의 연료가 아니라 집필의 부산물이다.

    의미를 먼저 확보하려는 집필은 연료 없이 출발하려는 시도와 같다.

    움직이지 못한 이유는 의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움직이기 전에 의미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5. 의미 강박을 내려놓기 위한 실전 인식 7가지 

    이 인식들은 집필의 수준을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집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기준이다.

     

    지금 쓰는 글에 의미가 없어도 된다
    → 의미는 나중에 부여된다.

     

    오늘의 문장은 버려질 수 있다
    → 버려질 문장도 집필을 살린다.

     

    중복되는 생각은 문제 아니다
    → 반복은 방향의 힌트다.

     

    중심은 쓰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 보이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의미는 정리 단계의 일이다
    → 집필 단계의 일이 아니다.

     

    지금은 통과만 해도 충분하다
    → 멈추지 않는 것이 기준이다.

     

    의미 없는 집필은 존재하지 않는다
    → 남아 있는 글은 모두 재료다.

     

    이 인식이 자리 잡으면 집필은 더 이상 의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의미는 집필을 통제하는 기준이 아니라 집필이 살아남았을 때 뒤늦게 따라오는 설명이 된다.

     

    6. 의미를 묻지 않을 때 집필은 끝까지 간다

    끝까지 간 집필을 돌아보면 의미를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의미를 잠시 내려놓았던 시간들이 집필을 살렸다.

    • 왜 이걸 쓰는지 몰랐던 날들
    • 중심이 보이지 않던 시기
    • 방향이 여러 번 흔들리던 구간들

    그 시간들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집필은 끝까지 이어졌다.

    47분 집중 집필 루틴이 만드는 것은 의미 있는 글이 아니다.

    의미가 나타날 때까지 글이 계속 살아 있도록 만드는 구조다.

    오늘 쓴 문장이 왜 필요한지 몰라도 괜찮다.
    하지만 그 문장 위로 내일의 문장이 올라올 수 있다면 그 집필은 이미 성공이다.

    집필은 의미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가 나타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자리를 오래 지킨 집필만이 결국 자기만의 의미를 갖게 된다.

     

    집필이 끝까지 이어지는 사람은

    처음부터 의미를 붙잡은 사람이 아니다. 의미가 없어 보이는 시간도 통과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오늘 쓴 문장이 어디에 쓰일지 몰라도, 방향이 전혀 보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집필은 계속된다. 의미는 호출해서 얻는 결과가 아니라, 충분히 쌓인 글 위에 뒤늦게 나타나는 부산물이다. 그래서 집필의 핵심은 해석이 아니라 유지다. 쓰고, 멈추고, 다시 돌아오는 이 반복이 끊어지지 않을 때 글은 어느 순간 스스로 의미를 만든다. 지금 쓰는 글이 불분명하다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다. 살아 있는 집필만이 끝까지 간다.